개발/기타

해석과 추론

JonghwanWon 2025. 3. 8. 23:52

무언가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단순한 창조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것들을 깊이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조합하며,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메이커에게는 두 가지 상반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하나는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분석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

다른 하나는 '추론'하는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예측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를 통해 살펴보자.


결말을 알고 사건을 해석하는 것 - 해석의 관점

식스 센스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영화의 결말에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말콤 박사는 처음부터 유령이었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영화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 왜 말콤과 그의 아내는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 왜 콜은 말콤과만 소통했을까?
  • 왜 말콤이 현실 세계의 사물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장면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결말을 알고 난 뒤에야, 그동안 놓쳤던 단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보였던 장면들이 사실은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해석의 과정이다.

이미 주어진 것들을 다시 살펴보며 의미를 찾아내고, "왜 이런 선택이 이루어졌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메이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제품을 만들다 보면, 반드시 기존의 시스템이나 기능을 뜯어보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부터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이어받아 유지보수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상황,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이어진다.

  • 기존 제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은 왜 이렇게 구성되어 있을까?
  • 이 구조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걸까?
  • 당시의 요구사항과 의사결정, 그리고 제약사항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을 모르고 무작정 뜯어고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식스 센스에서 결말을 알기 전까지 단서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처럼,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이유들이 있다.

 

그래서 메이커는 단순히 "이건 잘못됐다"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해석적 사고는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을 넘어, 기존의 것을 디딤돌 삼아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을 추론하는 것 - 추론의 관점

 

반대로, 식스 센스를 처음 보는 사람은 결말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까?

영화의 초반부부터 단서를 하나씩 모아가며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 콜이 유령을 본다고 말한다.
  • 말콤 박사는 콜을 돕기 위해 상담을 진행한다.
  • 콜이 실제로 유령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관객은 아직 결말을 알지 못한 채, 영화 속 단서들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콜은 왜 유령을 볼 수 있는 걸까?"

"말콤은 콜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단서들을 놓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말콤은 단 한 번도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아내와 사이가 나빠졌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넘긴다.

 

이것이 추론의 과정이다.

주어진 정보만으로 완전한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가설을 세우고 끊임없이 검증해 나가는 것.

 

다시, 메이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는 일은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여러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방향을 찾아나간다.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기능이 필요할까?
  • 이 기능이 기존의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 기존의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될 수 있을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단서는 항상 있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처음 볼 때 중요한 단서를 놓치듯이, 제품을 기획할 때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추론적 사고는 단순한 아이디어의 생성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식스 센스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면, 이 영화는 해석과 추론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구조다.

처음 볼 때는 추론적 사고를 하며 결말을 예상해 나간다. 결말을 알고 나면, 해석적 사고를 통해 장면들을 다시 돌아본다.

 

이 과정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과도 많이 닮아 있다.

새로운 기능을 기획할 때는 추론적 사고를 통해 논리를 전개하고, 기존 제품을 개선할 때는 해석적 사고를 통해 구조를 분석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는다.

 

해석은 추론을 돕는다

기존의 제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롭게 만들려고 하면, 불필요한 시행착오가 반복될 수 있다.

추론은 해석을 돕는다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으면, 기존의 방식에만 갇혀 발전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해석과 추론을 반복하는 것(지속적인 반복과 학습)은 제품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메이커는 단순히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끊임없이 개선하는 사람이다.

 

해석하며 배우고, 추론하며 나아가자.

그렇게 우리는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