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본격적으로 함께한 지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정확하게는 감독자로서, 지휘자로서, 조율자로서의 1년이 지나갔다.
지난 1년은 변화의 연속이었고, 가장 큰 변화는 업무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 80% 손코딩 → 80% 에이전트 코딩으로 이동했다.
- 쌓여 있던 기술 부채는 "몇 번의 대화"만으로도 해소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Write First, Decide Later.
일단 만들어보고 결정하는 접근이 가능해졌다. 이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은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업무를 넘어 일상 전반에서도 AI를 활용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혼란스럽다.
모두가 다른 말을 한다
Geek News에는 낙관과 비관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Reddit에는 바이브 코딩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쏟아지지만, 상당수는 비슷한 결과물을 재현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AI가 내어놓은 결과에 감탄하고, 누군가는 결과가 형편없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AI 활용을 잘못한 것"이라 하고, 누군가는 "당신의 역량이 드러난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만들어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깊이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그럼 우리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를 재정렬해야 할까?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이 혼란은 경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전 세계 개발자들이 동시에 겪는 현상이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빠르게 세상과 업무 방식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분명한 건 하나다.
1년 전, 2년 전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채택은 늘고, 신뢰는 떨어진다.
AI가 생성한 코드의 채택률은 올라가는데, 코드의 신뢰는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AI를 많이 쓰는 팀은 코드가 머지되는 양이 늘었지만, 동시에 코드리뷰 시간이 늘어나고, PR 크기가 커지고, 워크플로우의 병목은 코드 작성에서 코드 리뷰로 이동했다.
"이해 부채"라는 흥미로운 키워드도 등장한다. 리뷰가 "도장 찍기"가 되고, "대충 맞아 보이니까" 머지하는 순간들이 늘어간다.
채택률이 올라갈수록 신뢰가 떨어지고, 리뷰가 병목이 된다.
생산성은 오르는데 품질이 흔들리는 이 역설은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핵심 역량은 새 기술이 아니라 "판단력"
Matteo Collina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 판단력이라고 말한다.
- 시스템을 설계하고,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일
- 구현이 의도와 맞는지 판단하는 일
- AI가 확신을 담아 제시한 코드가 "겉보기엔 맞지만 실제로는 틀린 경우"를 잡아내는 일
- 프롬프트로 전달할 수 없는 맥락을 이해하는 일
그리고 동시에, 이건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시니어 엔지니어가 늘 해오던 그 역량이었고, 다만 이제는 "여러 기술 중 하나"가 아니라, "핵심 기술"이 되었다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리뷰가 병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병목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패턴을 더 빠르게 인식하고, 흔한 오류 유형을 정리하고, 검증을 더 효율화한다.
Addy Osmani는 더 단호하다.
아키텍처를 생각하고, 코드를 리뷰하고, 모든 줄을 이해하는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제출하는 코드에는 당신의 이름이 들어간다.
그 코드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AI로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숙련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다. 핵심은 여전히 인지적 노력에 있다.
AI를 "학습 도구"로 쓰느냐, "결과 생성기"로 쓰느냐에 따라 학습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호기심을 잃지 않고 배우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Daniel Miessler는 한 발 더 나아가 이야기한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생존해야 한다고.
Human 1.0: Survival — "Will I survive today?"
Human 2.0: Corporate — "What is my value to the economy?"
Human 3.0: Creative — "What do I want to create and contribute?"
"Creative"는 창의적인 자기 표현, 오직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고유한 가치로 정의된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CTO도 1년 전 비슷한 결을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AI 활용 역량은 점점 기본기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정체성은 "코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경험에서 비롯된 판단력, 협력, 설명할 수 없는 매력 — 인간다움이 더 귀해질 수 있다.
조직에서 벌어지는 문제
개인을 넘어, 팀 차원의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워크슬롭(workslop)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을 진전시키지 못하는 AI 생성 업무물을 뜻한다.
AI 도구가 쉬워질수록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완전한 상태일 확률이 높다는 데 있다.
워크슬롭의 가장 큰 문제는 작업 부담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 내용을 해석하고, 수정하고, 재작업해야 한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었는가?
- 읽자마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든다
-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든다
- AI로 텍스트 블록만 잔뜩 생성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워크슬롭을 받은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단지 생산성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워크슬롭은 흥미롭게도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워크슬롭을 받은 사람은, 발신자를 덜 창의적이고, 덜 유능하고, 덜 신뢰할 수 있다고 한다.
AI와 협업했다고해서 품질 기준을 낮출 수는 없다.
사람이 단독으로 만든 작업물과 동일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이 중요해질까
정리하면 이렇다.
- 코드는 더 빨리 만들어진다. 그래서 검증(리뷰/테스트/이해)가 병목이 된다.
- 생산성은 올라간다. 그러나, 신뢰/품질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비용은 뒤로 밀린다.
- 결국 차이는 "코딩 속도"가 아니라 판단력과 통제력에서 난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업의 중심이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AI의 도움 없이 글을 써보니, 뇌가 조금 활성화된 느낌이 든다.
평소 같았으면 마무리를 AI에게 맡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결론을 사람이 쓰는 일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대체할 수 없는 개발자, 그리고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어떤 역량이 중요해지고, 무엇이 가치를 두어야 할까.
요즘은 이런 "인간다운 글"이 오히려 유니크해졌다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현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학습하라고 돈을 받고 있는게 아니라, 비즈니스 가치를 전달하라고 돈을 받는다.